오첨 · 오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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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97年 오탁진이 작성한 《오씨30세계도》에 근거하면 吳氏의 시조는 서기500년(신라 지증왕 1년)에 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했다가 다시 중국으로
돌아간 오첨(吳瞻)이다.
오첨(吳瞻)은 태백왕의 25세인 오기(吴起:초나라 제상)의 45세손이다.

(吴起)是 战国时期著名的政治军事家、改革家、军事家、兵家代表人物。卫国(今河南鹤壁一带)人,通晓兵家、法家、儒家诸家思想初为
鲁将,继为魏将,后奔楚国,任令尹,主持变法,后被杀。

一生历仕鲁、魏、楚三国. 在内政、军事上都有极高的成就. 仕鲁时曾击退齐国的入侵. 仕魏时屡次破秦. 尽得秦国河西之地. 成就魏文侯的霸业. 仕楚时主持改革,史称“吴起变法”,前381年. 楚悼王去世. 楚国贵族趁机发动兵变攻杀吴起。后世把他和孙武并称为“孙吴”,著有《吴子》,《吴子》与《孙子》又合称《孙吴兵法》,在中国古代军事典籍中占有重要地位

오첨(吳瞻)의 둘째 아들 오응(吳膺)은 나이가 어려 중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었다. 후손 중 나주의 토호가 된 오다련(吳多憐)이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웠으며, 그의 딸은 고려 태조의 비인 장화왕후로서 고려 혜종의 어머니이다. 오응의 12대손 오광우(吳光佑)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었는데, 그의 현손인 오연총(吳延寵)이 고려 문종 때 다시 고려에 건너와 정착했으므로 오연총공이 오씨의 중시조가 된다. 중국 사천성 출신의 오연총은 고려에 동래하여 윤관과 함께 부원수로 북변의 여진을 토벌하였으며, 이부. 예부.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. 오연총의 5세손인 오수권(吳守權)은 오현보(吳賢輔), 오현좌(吳賢佐), 오현필(吳賢弼)이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. 이들 삼형제는 고려를 침입해 온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각각 해주군(海州君), 동복군(同福君), 보성군(寶城君)에 봉해져, 해주 오씨. 동복 오씨. 보성 오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三君 분파설로 전하고 있다.